♡ 지리에서 쓰는 가을편지 ♡
지난번 노고단 다녀 온 사진을 보고 어느 님께서 석류님의 가을이 시작된 거 같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정말로 그 분 말씀이 맞는걸까? 여느때 같으면 이불 속에서 꼼짝을 안할 시간인데 그 어두운 새벽길을 달려 지리로 향하고 있다 지리의 가을이 벌써 나를 부르고 있다
산행일 : 2010 . 10.3 코스: 중산리(05:45) - 천왕봉(10:30) - 장터목( 11:45) - 연하봉(12:40) - 장터목(13:10) - 중산리(15:45) 산행시간: 10시간 <> <> <>
새벽 5시 30분, 중산리 주차장에 들어선다 아직 어둠은 채 가시지 않고 있다 부슬부슬 가을비인가? 오전 중에 그칠거란 예보에 희망을 안고 달려왔다
지리산의 관문인 만큼 그 시간에도 여러 팀들이 산행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도 망설임 없이 랜턴을 켜고 출발을 한다 성수기라 올랐다는 주차요금 5,000원을 졸고 있던 공단 아저씨께 공손히 빼앗기고 지리속으로 스며든다
빗줄기는 날이 밝아지면서부터 잦아들더니 어느새 숲 사이 가득히 안개가 차 오른다 장터목 가는 길과 갈라지는 삼거리부터 지독한 직등 구간이 시작된다 법계사까지는 이를 악물고 올라야 한다
로타리 대피소에 다다르니 아직껏 느껴보지 못한 한가로움이 가득 차 있다 그 한가로움을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아 그 곳에서 아침을 해결한다
로타리 대피소에서 출발하니 구름은 바람을 타고 쉴새없이 흩어지고 모이기를 반복한다 이따금 보여주는 세상 아래의 풍경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해발 고도 1800 정도에 다다르니 반가운 놈들이 촉촉히 젖은 얼굴로 인사를 한다
조금은 성질이 급한 놈들인 듯 하다 아직은 대부분이 초록 빛깔인데 몇몇이서 서둘러 단풍 옷으로 갈아입은 것 같다
이렇게 각자가 자기의 시간과 색깔에 맞게 예쁜 단풍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5시 45분에 중산리에서 출발했는데 이곳 개선문을 지나는 시간이 9시 40분이다 물론 로타리 대피소에서 아침 식사를 해서 늦어지긴 했지만 예전 같이 속도가 나질 않는다 에~공~~~ 나도 이젠 늙어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빠르게 가는 게 부러운 건 아니다 이렇게 봐야 할 것들이 지천인데 휙~~ 지나버리면 무엇을 보고 간단 말인가! 어느때부턴가 우린 느린 산행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그래서 더 많이 산에 머무르고... 더 많이 보고......
거대한 바위틈에 붙어서 살며 나름대로의 색깔로 가을을 준비한 저것들은 또 얼마나 예쁜가? 저것들을 보고 있는 동안 많은 사람들은 달리다시피 우리곁를 스쳐 지나가 버린다
암벽이 좌로 늘어서 있는 걸 보니 상봉이 가까워진 듯 하다 희미한 구름 속에서 왁자지껄 한 무리의 사람들 소리가 들린다 천왕샘에서 나는 소리다
구름은 더욱 짙어지고 고사목도 눈에 띈다 오전 10시가 넘어서고 있다 하지만 촉촉한 기운이 가득한 새벽같은 분위기다
오전 10시 30분, 상봉 도착!!! 휴일이지만 비온다는 예보가 있어서일까 이처럼 한가운 상봉의 분위기는 처음이다 또한 거센 바람때문에도 오래 머물 수가 없다 우리도 인증샷만 남기고 바로 도망쳐야 했다
상봉에서 제석봉까지의 느낌은 늘 감동이였다 계절별로 색다른 느낌을 제일 빨리 전달해 주는 곳이 이곳이기도 하다 언젠가 늦가을에 왔을 때 북사면에 펼쳐진 겨울풍경에 뿅~~~ 가버린 적이 있었다 가을에도 어쩌면 제일 먼저 단풍이 드는 곳이 이곳일 것이다
벌써 이렇듯 운치있는 가을을 만들어 놓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손 잡고 걸어보고 싶은 가을 길......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해주고 싶은 가을 편지들.....
상봉에서 제석봉까지 이어진 예쁜 가을길에 우린 많은 시간을 머물러 있었다
제석봉이다 이곳에 오면 예전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고사목으로 인해 아름답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그 생각보다 애처로움(?)이 먼저 생각되어진다 왜 생각이 바뀐걸까? 고사목도 예전같이 많지가 않다 하나, 둘 알게 모르게 쓰러져 가고 있었다
장터목이다 여기도 예전과 달리 한가롭다 비 올거라는 날씨 예보때문에 한가로운 장터목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참, 화장실에다가 쓰레기를 버리고 가던 사람을 공단 직원이 적발하여 과태료를 부과하는 장면을 봤다 이 높은 산에까지 올라와 과태료 고지서를 받아야 하다니..... 어떤 기분일까?
장터목에서 점심을 먹고 중산리로 하산하려다가 일출봉 쪽 능선에 물드는 단풍을 보고 맛보기로 연하봉까지만 갔다가 되돌아 하산키로 한다
연하선경이라 하지 않았던가 역시! 이곳도 성질 급한 넘들부터 서서히 물들어 가고 있다 다음 주 중 정상 부근엔 절반 이상 물들지 않을까 생각된다
일출봉 방향에서 연하봉 방향으로 바라본 연하선경길......
꿈같은 이 길은 지리를 찾는 모든 이들이 걷고 싶어하는 길이 아니던가 걷고 있는 아내의 옆으로 연하선경의 심볼인 고사목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서서히 불타오르는 지리, 지리의 가을은 이미 붉게 채색되어 지고 있다
맛보기로 둘러본 연하봉 길을 되돌아 나온다 더 아름답게 꾸며질 것 같은 다음 주를 기대하며......
장터목에서 먹기로 한 점심을 이곳에 더 머무르고 싶어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멋진 풍경을 감상하며 성찬을 즐겼다
장터목에서 내려오다 유암폭포를 지나면 상당한 너덜지대가 나오는데 언제부터인지 이곳에 돌탑들이 쌓여지고 있었다
지루한 하신길에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색다른 곳으로 자리매김 하는 것 같았다 우리도 정성껏 작은 돌탑 하나를 쌓아놓고 왔다
법천폭포 쯤 내려오니 물들어가는 단풍이 계곡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지리의 가을을 예고하고 있었다
눈이 아플 만큼 아름다운 지리의 가을! 나는 오늘 그곳에서 섣부른 가을 편지를 쓴다 석류.